[ 건설업 ] 인기 없는 까닭은? "‘미래산업’ 비전이 없다" 연구개발(R&D) 등 혁신 투자 부족

이다인 기자 / 기사승인 : 2020-07-03 09:44:20
  • -
  • +
  • 인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국·내외 수주와 공사가 중단되며 타격을 입은 듯했던 건설업계가 호실적을 이어가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 대상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산업 등 신사업 업종에 비해 건설업이 미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6월 24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으로 급락했던 건설업 체감 경기 지수는 2개월 연속 상승하며 살아나는 추세다. 5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 대비 4.2포인트 오른 64.8을 기록했다. CBSI는 올해 초부터 하락해 3월 59.5를 기록하며 최저점을 기록하는 등 계속 악화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든 4월부터 회복세를 보였다.



CBSI는 기준선 100을 밑돌면 현재의 건설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을 넘으면 그 반대다.

주요 대형 건설사들의 1분기 실적을 살펴봐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2019년 시공능력평가 1위인 현대건설은 영업이익이 1653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9% 감소했지만 당기순이익은 26% 증가했다. 특히 수주에서 두각을 드러내 연초 해외 수주를 비롯해 국내 재개발 사업에서도 선전하면서 총 9조9312억원의 공사를 따냈다.



대림산업도 영업이익 290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0.5% 늘고 매출은 2조5094억원으로 8.1% 증가해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GS건설의 매출(2조4410억원)과 영업이익(1710억원)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6.2%, 10.5% 낮아졌지만 영업이익률(매출 대비 영업이익 비율)은 업계 최고 수준인 7.0%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건설업계의 낙관적인 전망과 괜찮은 실적에도 투자 대상으로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지 못한 모양새다. 이같은 심리가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주식 시장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요 건설주로 구성된 KRX 건설지수는 지난해 1월만 해도 680.25를 기록했지만 이후 매달 하락해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발표한 8월 536.08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12.16 대책이 발표된 직후인 올해 1월(494.47) 400대로 떨어졌고, 3월에는 367.91을 기록해 전년 동기(632.03) 대비 42%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달에는 지수가 소폭 회복세를 보여 465.91까지 올랐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저평가 구간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업종 대표 종목인 현대건설의 주가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떨어진 이후 아직 1년 전 주가만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대건설의 주가는 5만5000원대를 유지했지만 현재 주가는 3만5000원 선을 오가고 있어 1년 전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공사비만 2조원에 육박하는 한남3구역 시공사로 선정된 지난 21일 이후 기대감이 다소 반영된 수치다. GS건설과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도 주가가 1년 전보다 30~40% 낮은 상황이다.



건설업종에 대한 전망은 한때 회복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여당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 공약으로 커진 기대감에 건설주의 실적 안정성과 벨류에이션 매력을 재평가할 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뉴딜'에 전통 뉴딜 업종으로 꼽힌 건설·토목 SOC 사업이 빠졌고 지난달 미북정상회담도 취소되면서 남북 경협 기대감마저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가 미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직면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주식시장은 한 마디로 ‘꿈을 먹고 사는 시장'인데 투자자들은 건설주에 꿈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라면서 "주가가 아무리 싸고 실적이 좋아도 언택트(비대면)를 필두로 한 IT산업 등 미래가치가 높은 업종으로 투자가 몰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은 "건설사들이 소비자에게 미래의 안정적 매출이나 수익구조를 가져가는 등의 비전을 못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면서 "근본적으로 매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개선은 어렵겠지만, 임대주택이나 오피스텔 건설관리에 언택트 기술을 접목해 신사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 경기 확신 못해 M&A로 사업 재편·다각화



2015년 건설업계는 충격에 빠졌었다. 상위 100대 건설사 가운데 동부건설·경남기업·남광토건 등 8개사가 법정관리에 돌입해서다. 이 외에도 6개 건설사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건설사들은 2008년 시작된 건설경기 침체로 악성 미분양이 쌓이며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고, 결국 대거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도급순위 10위권이던 쌍용건설은 두바이투자청(ICD)에, 30위권이던 동양건설산업은 EG건설에 각각 매각됐다. LIG건설도 현승디앤씨에 팔렸다.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건설사들은 사업을 분할 매각해 긴급자금을 수혈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불과 5년이 지난 2020년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2~3년간 주택 경기 호황에 막대한 현금을 쥔 건설사들이 적극적으로 기업 쇼핑에 나서며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것. 건설사들은 불황기에 절치부심한 듯 신규 사업 진출에 지갑을 열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M&A에 가장 활발한 것은 중견 건설사다. 대형 건설사 인수 시도를 비롯해, 부동산·유통 등 연관 산업들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호반건설주택을 합병해 2019년 도급순위 10위권에 진입한 호반건설이다. 호반건설은 그간 ‘무차입 경영’ 등 보수적 경영 기조를 이어왔으나, 지난해부터 레저·미디어·유통·벤처투자 등 어떤 건설사보다도 공격적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호반건설은 2018년 리솜리조트를 2500억원에 인수해 호반호텔앤리조트를 계열사로 출범했고, 지난해 SG덕평CC·서서울CC 등을 사들이며 레저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호반건설은 이 밖에도 제주 중문 퍼시픽랜드와 스카이밸리CC·하와이 와이켈레CC 등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베르디움의 경우 지난해 사명을 호반프라퍼티로 변경하고 유통업계에 뛰어들었다. 가락시장의 도매시장법인 ‘대아청과’를 사들여 농산물 유통 사업에도 진출했다. 호반프라퍼티는 금 유통 전문기업 ‘삼성금거래소’도 사들였다. 2011년 광주방송(KBC) 인수에 이어 지난해 포스코가 소유한 서울신문 지분 19.4%를 사들여 3대 주주가 됐다. 포스코 소유의 한국경제 지분 0.15%도 매입했다. 지난해엔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 ‘플랜에이치벤처스’도 설립했다. 2015년 우방이엔씨, 2016년 울트라건설을 인수해 몸집을 키운 호반건설이 본격 세력 확장에 나선 것이다. 호반건설은 2018년 자신보다 10배나 큰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2019년 말에는 M&A 전문가 최승남 대표를 선임해 건설산업보다는 신규사업 확대에 무게추가 기울었음을 드러냈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매출 2조4836억원(연결기준)로 전년 대비 50%가량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4217억원에 달했다. 유동자산도 2조8960억원에 달해 기업 인수 여력은 충분한 편이다.

호반건설의 이런 행보는 경영권 승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장남 대헌씨는 호반건설, 차남 민성씨는 호반산업, 장녀 윤혜씨는 호반프라퍼티의 최대 주주다.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계열사 일감 처리 등 교통정리가 끝나는 대로 기업공개(IPO)에 나설 전망이다.



반도건설은 최근 경영권 분쟁에 빠진 한진칼 지분을 확대하며 항공업 진출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건설은 KCGI·조현아와 손잡고 3자 연합을 구축해 한진칼 지분 45.23%를 확보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우호 지분 41.30%를 크게 앞선다. 반도건설의 최초 지분율은 10%에 못 미쳤으나 꾸준히 지분을 매입하며 단독으로 19.2%의 지분을 갖고 있다. 반도건설은 경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전제로 연합에 참여했으나, 경영공시에 한진칼 지분 매입 목적을 ‘경영 참여’로 신고해 여지를 남겼다.



HDC현대산업개발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 중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항공산업 불황으로 최근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몽규 회장의 인수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그간 꾸준히 사업다각화를 추진해왔다. 2015년 HDC신라면세점을 통해 면세업에 진출했고, 지난해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와 리조트회사 오크밸리도 인수했다.

중흥건설도 적극적 M&A 행보로 주목 받고 있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3년 안에 4조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기업을 인수, 재계 20위권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호남지역 건설사인 중흥건설은 지방건설사라는 인식 때문에 그간 대규모 정비사업을 따내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때문에 대우건설·두산건설의 잠재적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흥토건·중흥건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300억원, 유동자산은 3조3000억원으로 평택·서산 도시개발 사업으로 2조7000억원 정도를 추가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은 또 폐기물 처리 업체 인수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견건설업체 아이에스(IS)동서는 올 상반기 M&A 최대어로 꼽히던 폐기물업체 코엔텍 인수에 성공했다. 코엔텍은 폐기물 매립과 소각, 열 판매 등을 하는 폐기물처리업체다. 하루 평균 매립처리량 344톤, 소각처리량은 488톤으로 SKC·SK에너지·롯데케미칼·현대자동차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지난해 매출 711억원, 영업이익 284억원을 나타냈다.



폐기물처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일부 수익성을 보장받는 사업이다. 폐기물을 많이 배출하는 건설사들로써는 진출 유인이 많다. 특히 정부의 환경 규제 강화로 폐기물 처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번 인수전에 태영건설·호반건설 등 건설사를 중심으로 10개 회사가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태영건설도 자회사 TSK코퍼레이션을 통해 폐기물 처리업체 프리텍 등을 인수했다. 베트남 최대 환경기업 ‘비와세(BIWASE)’와도 파트너십을 맺고 동남아와 중국 진출을 모색 중이다.



저성장기엔 전통 건설사 불리, 관리회사 부상할 듯

GS건설이 플랜트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영국 철골 건축 기업 엘리먼츠 등을 인수하며 모듈러 주택 시장에 나서는 등 대형 건설사들도 사업 다각화에 나선 상태다. GS건설은 모든 부채를 일시에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보유한 순현금이 많다.



건설사들의 이런 움직임에 한 시행사 대표는 “앞으로 건설 경기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건설사들이 풍부한 자금력으로 바탕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제가 고도화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 신규 건축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건설 경기는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버블 붕괴로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도 대형 건설사가 잇달아 도산하고, 147년 역사의 타이세이건설의 사세도 쪼그라들었다. 이에 반해 리모델링과 사업개발, 금융 등에 초점을 맞춘 미쓰이부동산이 일본을 대표하는 건설회사로 떠올랐다.

부동산 시행사 관계자는 “고층 건물의 경우 새로 짓는 것보다 리모델링의 수익률이 높으며, 1인가구 증가, 인구감소 등의 인구 환경적 변화로 대규모 건설 수요가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그간 국내 건설사들은 주택 시장에 몰입해 연구개발(R&D) 등 혁신 투자가 부족했다. 이런 경쟁력 부족을 M&A 등을 통해 보완하려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저널 = 이다인 기자]

[저작권자ⓒ 데이터저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