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재 부족 ]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이유?

김은영 기자 / 기사승인 : 2020-07-02 1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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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서울대가 신설한 `인공지능(AI)반도체연합전공` 모집에는 41명 선발에 74명이 몰렸다. 연합(복수)전공 경쟁률이 2대1에 육박한 것은 서울대에서도 매우 드물다. 이공계 학생뿐만 아니라 특히 상경계와 문과계열 학생 관심이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지난 3월 개교한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경쟁률이 6대1을 넘었고, 인공지능 협동과정(석사) 모집에는 3명 자리를 놓고 16명이 몰려들었다.



서울대 공대가 2020학년도 1학기 대학원 경쟁률 0.87대1을 기록하며 4년 연속 정원을 채우지 못한 점을 감안할 때 시사하는 바는 뚜렷하다. 학생들이 원하는 학과는 분명한데 대학의 교과과정이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과정도 고육지책으로 겨우 마련한 교육과정이다. 수도권 대학은 정원을 단 한 명도 늘릴 수 없다. 이 같은 규제를 그대로 두고 교육부가 짜낸 묘책이 편입학으로 남는 자리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마저도 교육부와 상의해서 해야 한다.



실제로 교육부 장관은 AI, 빅데이터,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디스플레이, 차세대 통신,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첨단신소재, 전기차·자율주행차, 신재생에너지, 바이오헬스를 첨단 분야로 고시했다. 예를 들어 서울대는 올해 컴퓨터공학부와 전기정보공학부 정원이 소폭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학생 정원에 미달하는 결손 인원을 활용한 것이다.



서울대는 공대 정시모집 인원 일부를 무전공으로 뽑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정원을 늘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입시 방식까지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려대가 2021학년도부터 정원 각 30명으로 데이터과학과, 스마트보안학부, 융합에너지공학과 등 첨단 분야 학과 3개를 신설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결손 인원을 활용해 정원을 쥐어짜낸 것이다. 산업계는 물론 공대 교수 사이에서도 첨단산업 관련 전공을 이처럼 묶어두는 규제는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술과 산업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원 규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정원 규제 전면 해제를 검토하거나 부분적으로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달 초 21대 국회에 바라는 입법과제를 통해 "최첨단 분야 학과의 수도권 대학 입학 정원 총량규제를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인력 부족 문제를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리면 지방대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를 허가해주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도입 취지는 국토 균형 발전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려면 다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 수도권 정원을 늘려줄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과연 앞뒤가 맞는 얘기일까.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규제로는 급변하는 첨단기술 분야 교육 수요를 전혀 맞출 수 없다는 비판이 많다. 방치하면 국가적인 낙오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대표적 분야가 첨단 제조업 핵심인 AI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이 15년째 55명으로 묶여 있는 동안 미국 스탠퍼드대는 관련 전공자를 불과 10년 새 745명까지 5배 이상 확대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전자 주력 인력이 전기·전자공학 전공자 중심이었다면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 양성을 위해서는 하드웨어는 물론 컴퓨터공학 등 소프트웨어를 이해하고 융합설계가 가능한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당장 2022년까지 AI·클라우드·빅데이터 등 4대 미래 유망 분야에서만 신규 인력 3만1833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권혁민 전경련 산업전략팀장은 "반도체, AI, 융복합 등 4차 산업 최첨단 분야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대학 관련 학과 입학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AI·빅데이터 등 수도권 대학 4차 산업 최첨단 분야 학과는 5년간 한시적으로 총량규제 적용을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령 향후 5년간 대학이 최첨단 분야 관련 학과 정원을 매년 30% 범위에서 증가시킬 수 있도록 하고 교육부가 최종 승인해 확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학뿐 아니라 관련 기업과 연구소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이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학과를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예컨대 제조 분야 핵심 소재 국산화를 위해 기업체가 참여·지원하는 교육 커리큘럼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과정을 개발해 학생을 평가하는 인천대 `매트릭스 학사제도` 모델이 그러한 사례다. 인천대는 학생이 64개 학과 중 한 과에 입학하면 모든 학생이 학과 과목과 별개로 기업이 설계한 전공을 복수전공할 수 있다. 이 전공에는 포스코건설 풀무원식품 아모레퍼시픽 등 20여 개 기업·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조동성 인천대 총장은 "산업계·사회 수요 변화와 대학 구조조정 사이 간극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정원을 건드리지 않고 복수전공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업 수요를 반영하면 대학이 취업양성소로 전락한다는 경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대학 커리큘럼에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KDI "인공지능 시대, 대학 정원 규제 재검토 해야"



기술의 진보와 사회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대학의 ‘총량적 정원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원 규제가 대학·전공의 서열화로 집약되는 입시-취업의 이중적 선별과정과 맞물리면서, 많은 학생들이 희망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를 9일 발표했다. KDI는 대학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는 각종 정원 규제로 인한 학과 간 정원 조정의 경직성, 학과별 취업정보의 부족, 전공 선택 시기의 획일성 등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고교 졸업 후 국내외 대학·전문대학에 진학한 학생 비율(대학진학률)은 76.5%를 기록했다. 하지만 막상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심각한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졸업 이후에도 미취업자로 머무르는 청년의 비중은 작년 기준 전체 대졸자의 26.8%에 달했다.

특히 취업자조차 그 중 상당수가 대학 전공과는 무관한 직장에 취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고등교육 이수자(25세~34세) 가운데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을 선택하는 비중은 약 50% 달했다. 이는 조사된 OECD 소속 24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KDI는 우리나라에서 전공 선택이 제약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정원 규제를 꼽았다. 현재 서울대 등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 지역의 인구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입학 정원 제한을 받고 있는 상태다.



KDI는 정원 규제의 전면 해제를 검토하거나, 부분적으로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기술과 산업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위해서는 정원 규제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 신사업 관련 전공 분야의 정원은 정원 규제와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대학이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수도권 대학에도 신산업 관련 전공자가 증가하면서, 전공 선택의 왜곡이 축소될 수 있다. 또 나머지 전공에 대해서는 정원 규제가 유지되기 때문에, 지역균형 발전과 관련된 부작용이 크지 않다.



KDI는 의료, 교육 등 특수 전공의 정원 규제도 전공-직업 간 미스매치의 원인으로 봤다. 현재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에 따라 보건·교육처럼 특수 전공의 정원은 대학에서 임의로 정원을 조정할 수 없다. 이러한 특수 전공 정원 규제는 관련 직업군에 대한 진입 규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의료인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하는 자격이나 면허를 소지해야 한다. 자격·면허 시험 응시자격에는 관련 분야 전공자 여부가 명시된다. 이와 같은 이중의 진입 규제는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을 관리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해당 전공자의 소득 및 안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KDI가 대학 졸업 후 약 20년 간의 노동시장 성과를 추적한 결과, 남녀를 막론하고 의약 및 교육 계열의 소득이 높게 나타났다. 인문 계열의 소득을 100이라고 봤을 때, 의약계열은 175, 교육계열 150, 공학계열 125, 사회·자연계열 120, 예체능계열 105 수준이었다. 대학 전공 선택에 따라 생애소득이 70% 내지, 그 이상의 격차를 보일 수 있다.



KDI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로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1개 학교 당 1인 기준으로 배정돼있는 진로전담교사를 학생수에 따라 추가 배치하고, 진학·진로 상담 시 대학·학과별로 통계를 공표하는 취업률 외에 소득정보를 추가하는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KDI 관계자는 "자연이나 공학 계열의 학생은 높은 소득 때문에 의대를 선택하고, 인문·사회 계열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학생들이 높은 안전성 때문에 교대를 선택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며 "생애주기에 걸친 소득이나 취업률에서 적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큰 격차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한편으로 쏠리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KDI는 전공 선택 시기의 획일성도 문제로 봤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일찍 결정할 수 있는 반면, 상당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발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적성과 흥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앞서 KDI가 2018년 대학 신입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신입생의 비중은 28.3%에 달했다. 신입생 10명 중 3명은 전공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전공계열별 차이도 컸다. 인문, 자연, 사회, 공학 계열 등의 순으로 변경 희망자의 비중이 높았다.



KDI는 전공 선택 시기를 다양화하고 전공 선택 및 변경의 자유를 확대하는 유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로를 일찍 결정한 학생들에는 해당

분야의 심화교육이 필요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일반 교육과 함께, 광범위한 진로 탐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KDI 관계자는 "추후의 전공 변경에 제한이 되지 않으려면, 필수과목의 범위를 충분히 넓게 설정해야 한다"며 "고등학교 시절 전공 변경 시, 초기 실수가 대학입시에 지나치게 불리하지 작용하지 않도록 평각방식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재도 없고 활용도 힘들다



한국 기업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 손가락에 꼽히는 요인은 인재 부족이다. 새로운 IT를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접목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추진하려 해도 이를 시행할 ‘선수’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지난해 9월 ‘한국이 AI 부문의 리더가 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통해 “한국은 인재가 부족해 중국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연구기관들의 분석도 비슷하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지난해 4차 산업혁명의 4대 축인 AI, 클라우드, 가상·증강현실(VR·AR), 빅데이터 분야에서 2022년까지 개발자 3만1833명(석·박사급 1만9180명 포함)이 부족할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인재 부족의 주된 원인으로는 경직된 대학 학제를 들 수 있다. 서울대의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55명이다. 14년째 그대로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35명 줄었다. 정부가 전체 정원을 통제하는 데다 학과 간 정원 경쟁도 치열해서다. 사립대도 상황이 똑같다. 학과별 학생 정원에 맞게 교수진을 선발한 탓에 특정 학과나 학부의 정원을 늘리는 게 쉽지 않다.



기업들이 어렵사리 인재를 뽑아도 100% 활용할 수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 탓에 두세 달 이상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소프트웨어(SW) 개발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고급 IT 인력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미국은 연봉 10만달러 이상 받는 사무직 고액 연봉자의 근로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근무시간 제한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화이트칼라 예외적용(white collar exemption)’ 조항을 뒀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애플 등 실리콘밸리 대기업엔 개발자들이 벗어놓은 옷을 세탁해주는 부서가 따로 있다”며 “밤을 새워가며 일하는 직원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기업 발 묶은 데이터 규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신기술들의 공통점은 데이터다.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적절히 가공해 기업 경영의 효율을 올리는 게 ‘IT 경영’의 핵심이다. 한국에선 데이터를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개인의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데이터는 수집과 가공이 불가능하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하고 있다. 본인 동의 없이 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사업을 하면 정보통신망법이, 금융회사엔 신용정보보호법이 적용된다. 개인정보 범위를 폭넓게 잡고 있다는 점은 세 가지 법 모두 동일하다. 지난해 개인을 식별하게 힘들도록 정보의 일부를 조작한 가명정보 사용을 허용하는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시민단체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는 “기업들이 과감하게 디지털 전환에 나서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클라우드, AI 등을 도입해도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며 “데이터 규제가 기업들의 발을 묶고 있다”고 말했다.



“소 잡는 칼로 닭만 잡는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 A사는 삼고초려 끝에 IBM에서 AI 전문가를 영입했다. 그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A사를 떠났다. 그의 전문 업무를 뒷받침해줄 만한 IT 인력이 별로 없는 데다 경영진도 IT에 무지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규모가 큰 기업 중엔 A사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외부 전문가를 찾아 나서는 수준엔 이르렀지만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선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데려온 ‘S급’ 인재에게 수준이 낮거나, 일반적인 조직관리 업무를 시키는 사례가 많다”며 “소 잡는 칼로 닭만 잡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정부의 SW 지원 사업을 통해 보조금을 받아 클라우드를 도입했지만 이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 사례가 상당하다. IT업계에서 중소기업의 클라우드 이용률 통계를 신뢰하지 않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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