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중국에서 4차산업시대 '노동자'의 의미변화

오윤지 기자 / 기사승인 : 2020-06-09 1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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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국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산업과 노동정책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변화는 생산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디지털 경제의 혁신과 촉진을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2019년에 발표된 정책 보고서에서도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기술의 연구와 개발을 심화하고, 신기술과 바이오의약 및 신에너지 자동차 등 신흥 산업을 적극 육성함으로써 디지털 경제를 보다 확대해 나갈 것임을 명확히 했다. 실제로 2018년 기준 중국 디지털 경제의 규모는 31조 3천억 위안에 달하며, 이는 총 GDP의 34.8%에 해당한다.



한편 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에서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은 생산 가능인구의 감소, 낮은 노동비용을 통해 얻은 경쟁력의 약화, 산업노동자의 낮은 숙련수준이 중국의 제조강국 실현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근거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2017년 4월 '신시기 산업노동자대오 건설 개혁방안'(이하 개혁방안)을 발표하여 근로자 전반의 자질 함양을 전략적 과제로 적극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개혁방안 에서는 산업노동자의 사상 및 정치의식 강화와 개선, 산업노동자 양성체계 구축, 인터넷을 활용한 산업노동자 역량 구축, 산업노동자 역량개발제도 혁신, 산업노동자 양성 기반 강화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하여 25항의 개혁 조치를 제시했다.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노동'의 마주침

최근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에 소재한 제이식 과기유한공사(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 Jasic Technology) 노동자들의 투쟁과 이들을 지원하는 대학생들의 연대 활동,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중국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노동자와의 연대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주로 북경대, 인민대, 남경대, 중산대 등 주요 대학의 '마르크스연구회' 소속 학생들이었고, 이들이 노동현실 비판의 근거로 삼은 것이 '사회주의 사상'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노동문제를 넘어 중국 사회체제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가혹한 대우에 반발해 지난달 시작된 중국 선전의 자스테크(深圳) 유한공사 노동권 운동은 당국과의 대립을 계속 확대 해 왔으며 지난 달 총 약 80 명의 노동자와 연대 학생에 이어 공장과 경찰에 의해 구타, 체포 또는 소환 된 후, 광저우 노동 운동의 어린 소녀인 심몽우(沈夢雨)도 11 일에 실종되었다.



크리스티 선전공장 노동자는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며 벌금에 대한 명분을 달리하는 등 사측의 불법 행위에 대해 5월 노조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벌였으나, 가입자들은 7월 중순 회사로부터 불법으로 해고당했고, 유권 노동자 폭행당했다는 7월 중순까지 전해졌다.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퍼지자 베이징대 등 여러 일류 학부가 공개적으로 크리스티아누족을 지원했고 민간의 다른 힘도 가세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 중국 정부도 지속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2017년 10월에 개최된 제19차 당 대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발표하고, 2050년까지의 국가발전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처럼 오늘날 중국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과 열망을 바탕으로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위로부터의 정책이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 노동문제는 사회주의 시기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를 읽는 중요한 통로이다.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중국 노동자들의 저항에서 사회주의 시기의 기억과 담론들이 소환되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도 이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노동'을 매개로 사회주의 시기와 개혁개방 이후에 대한 '기억의 정치'가 전개되고 있으며, 이것이 중국 사회 변화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노동정책의 변화 과정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의 정치적 경합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노동체제의 제도적 특성과 노동자 저항의 정치적 동학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중국에서 도시-농촌 간 이원적 노동관계와 도시 내부의 분절적 노동시장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검토하고, 정부의 노동정책 및 다양한 행위자의 경합과 저항, 적응에 의해 중국 노동체제와 관련된 제도가 어떻게 변화되고 재생산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 노동제도와 정책의 변화가 노동자 계급의 형성 및 변용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신노동자'(新工人) 집단의 저항과 조직화 과정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도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리고 '사회치리'(social governance) 체제의 수립 및 '조화로운 노동관계'의 구축이라는 거시적인 사회통치 체계의 맥락 속에서 중국 정부는 어떻게 노동체제의 제도적 재설계를 하고 있으며, 그 한계 및 과제는 무엇인지를 분석했다.

 

중국 노동체제의 제도적 특성과 노동자 저항의 정치적 동학

중국 도시군 분포현황

중국 노동체제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 노동관계의 이원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에서 이원적 노동관계가 형성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요인가운데 하나는 도농 간의 노동력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고용 체제의 이원화를 고착화한 호적제도의 실시이다. 그리고 계획경제 시기에 추진된 중공업 중심의 발전 전략과 이에 부응한 고용제도, 분배제도 등의 노동정책으로 인해 중국 특유의 도농분할, 부문별 분할, 지역적 분할 구조가 체계적으로 확립되었다.



또한 계획경제 시기에 도시에서의 경제생활과 사회복지 및 정치적 통제는 모두 '단위체제'(單位體制) 안에서 이루어졌다. '단위'는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정치적 영역에서는 국가와 노동자를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단위체제는 노동력 관리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주거와 교육, 일상생활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 등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장하려는 일종의 복지 시스템이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에는 이러한 단위체제에 기초하여 임금제도, 기업관리제도, 복지제도 등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고용제도의 특징은 국가가 통일적으로 노동력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체제였다.



개혁개방을 통한 중국 경제체제의 개혁은 '정부-기업' 관계의 변혁을 둘러싸고 진행된 일련의 제도적 진화의 과정이었으며, 개혁의 중심은 기업의 경영 자주권 확대였다. 즉 시장화 개혁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노동계약 제도가 점차 전면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기업은 고용 자주권을 가지게 되었고, 노동자도 노동력 공급의 주체가 되어 노동력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자유로운 노동자'를 바탕으로 한 노동시장의 형성은 중국 정부가 노동력의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인정한다는 표지로 인식되었으며,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을 소유한 노동자'와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노동자' 간의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지위의 간극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신노동자의 주체화와 사회관리 방식의 변화

특히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동자의 세대구성이 전환되기 시작하고, '신노동자'가 점차 중국 노동운동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들의 집단적 저항과 조직화의 방식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공이라는 '이중적 신분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신노동자'로 호명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파업사건에서 드러나듯이 기존의 노동관계 시스템으로는 노동자들의 높아진 권리요구 및 평등에 대한 기대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즉 신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노동자의 저항이 중국 노동관계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의 소외, 전제적 관리방식, 도시에서의 배제, 차별적인 이등시민 신분에 대해 어떠한 '저항의 정치'를 만들어나갈 것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정책변화는 어떠한 양상을 보일 것인지가 중국 노동정치의 동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더욱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노동문제를 단순하게 '노동관계'에 대한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좀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중국 '당-국가' 정책과의 상호작용 및 이에 따른 정책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노동문제는 협소한 의미의 '노동'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통치전략 전반을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노동체제의 변화는 사회 전체의 전반적인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으며, '사회치리'로의 전환이라는 사회통치 체계의 맥락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자본과의 평등한 협상을 진행하는 중요한 주체인 '공회'에 대한 개혁이 미진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수호 행동은 여전히 '사회의 불안정 요소'로 규정되고 있으며, 심지어 통제와 단속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회치리로의 전환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가 사회조직에 대한 활성화와 규제완화인데, '노동 NGO'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즉 다수의 사회조직에 대해서는 포섭의 전략을 취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경제발전에 위해가 되는 '노동 NGO'에 대해서는 '안정유지'를 명목으로 탄압과 배제의 전략을 취하는 분할통치가 행해지고 있다.



중국 디지털 경제 및 공유경제 관련 노동관계의 변화

중국은 인터넷 시장에 진입한지 20여 년 만에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모바일 인터넷 기술이 빠르게 보급되고 활용되면서 인터넷과 다양한 업종 간의 융합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나아가 신기술, 신산업, 신업종의 활발한 성장과 함께 관련 일자리가 대거 창출되었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인터넷과 전통 업종의 결합)가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과 플랫폼 경제, 공유경제의 성장을 이끌면서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산업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 경로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플랫폼 취업', '온라인 취업', '창업형 취업' 등 새로운 취업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취업과 창업 중에서도 특히 '플랫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플랫폼을 통한 취업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는 중국 도시지역의 주요한 신규취업 경로가 되었다. 중국 공유경제 시장 거래액은 2015년 1억 8100만 위안에서 2016년 3억 4520만 위안으로 늘었고, 2017년에는 2015년의 2.7배인 4억 9205만 위안까지 증가했다. 공유경제활동 참여자 수도 2015년 5억 명에서 2016년 6억 명, 2017년 7억 명을 넘어서는 등 해마다 평균 1억 명씩 증가하고 있다.



또한 중국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의 직원 수는 2015년 약 500만 명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약 5.5%를 차지했고, 2017년에는 716만 명을 기록하여 2017년 도시 신규취업자 수의 9.7%를 차지했다. 이는 도시 신규취업자 100명 중 약 10명이 공유경제 기업의 신규채용 인력임을 의미한다.

 

노동관계의 도전 과제

 

이처럼 중국은 디지털 경제 및 공유경제의 발전에 따라 국가적으로 새로운 산업모델에 대한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취업 촉진법(就業促進法)과 노동계약법(劳动合同法)에 '유연고용'과 관련된 조항을 계속 추가하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각종 유연한 형태의 취업형태는 형식이 복잡하고, 고용관계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명확한 법적 정의와 정책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멍쉬더(孟續鐸, 중국노동사회보장과학연구원 취업창업연구실 부연구원)에 의하면 국가차원의 최상위 설계가 부재한 채, 당면문제 해결과 점진적인 정책개선에 그치고 있으며 새로운 취업형태에 대한 법적 보장도 미흡한 상황이다.



게다가 새로운 업종에 고용된 인력에 대한 노동계약 형태가 상대적으로 모호하여 노동권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 체계도 미흡한 수준이다. 기존 사회보장 서비스는 전통적인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어서 새롭게 등장한 고용형태의 특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통적 노동관계 시스템으로 포괄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인력에 대한 관련 법제도 및 정책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아 여러 방면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첫째, 겸직업무에 대한 현행 노동법 규정이 미비하다. 노동시장은 이미 겸직·겸업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겸직업무에 대한 법규가 미흡한 부분이 많다. 기존의 노동계약법에 따르면 노동자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고용업체와 노동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계약법은 노동자가 둘 이상의 고용업체와 이중 또는 다중 전일제 노동관계를 맺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지도 않아서 명확한 규정이 어렵다.



둘째, 신기술, 신산업, 신업종, 신모델로 탄생한 새로운 취업형태는 전통적인 노동관계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데, 근로시간, 업무형식, 임금지불, 관리규칙 등에서 전통적인 기업과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기존의 노동관계 체계로는 새로운 취업형태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파생되는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현행법과 규제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실정이다.



셋째, 비정형 노동관계의 법적 정의가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아 유연인력활용 역시 통일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넷째, 현재 비정형 노동관계에서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익 보호가 미흡하다. 근로시간, 업무 장소, 근로조건 등이 관련 노동법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비정형 노동관계 거버넌스는 법률제도의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으며, 노동자 권익보장에도 한계를 보인다.

산업의 디지털화와 노동의 미래

중국 디지털 경제의 발전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세계 경제체제는 '4차 산업혁명', 즉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IoT,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따른 산업구조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이 노동영역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비관적 전망과 낙관적 전망이 공존한다.



즉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한편에 존재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새롭게 창출될 일자리와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일과 삶의 균형이 실현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산업의 디지털화'는 노동과 관련된 인식과 실천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산업의 디지털화는 작업장 체제와 분배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산업의 디지털화는 생산방식과 생산조직을 변화시킴에 따라 고용형태, 직무의 수행방식 등 노동과정 및 노사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산업의 디지털화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혁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같은 비용과 노력으로 보다 많은 생산이 가능해졌고, 보다 많은 소득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삶의 여건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개개인의 삶이 향상된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및 로봇에 의한 노동력의 대체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불안정한 취업노동의 확산과 소득의 격차는 심각한 사회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위험을 최소화하고, 새롭게 창출될 기회를 어떻게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산업·노동·지역'의 동시적인 변동을 수반한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통합된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이러한 구조 변동은 더 이상 일국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의 핵심 변수로 자리한 중국의 디지털 기술 발전과 이를 추동하고 있는 산업정책의 주요 특징,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노동관계의 변화와 쟁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도시 속의 신노동자

 

흔히 ‘농민공’이라 불러온 이들 ‘신노동자’들은 2018년 현재 2억 9천만 명에 다다르며 지금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비정규직처럼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일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며 도시 외곽의 허름한 집에서 생활한다. 한국의 비정규직이 850~900만 명이라고 가정한다면, 약 32~33배에 달하는 숫자다. 전체 인구수 대비 비율로 보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의 ‘불안정 노동자’(농민공) 숫자가 한국보다도 높은 셈이다.



베이징이나 충칭, 상하이, 광저우 같은 초대형 도시에서 이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모든 거래에 이들의 노동이 숨겨져 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 거의 모든 큰 건물 앞마다 서 있는 경비 노동자, 거리로 나가 마주치는 와이마이(外卖)와 콰이디(快递) 등 배달 노동자, 파인애플이나 전병을 파는 노점상, 미용실과 음식점의 점원, 고물상 등 도시의 가장 하위에 있는 모든 노동이 이들 농민공(이하 ‘신노동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월 1500~2000위안(약 35만 원) 정도의 돈을 받고 일하는데, 지난 두세 달간 꽤 절약하며 베이징에서 살아온 필자로서는 이 돈으로 대체 어떻게 한 달을 살 수 있는지 심히 궁금하다.



이들에게는 집이 없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등록된 호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농촌이나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이주해 10년 이상 일하더라도 이전 호적을 유지해야 한다. 집을 사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때로는 서울보다 비싸기도 한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높은 부동산 물가를 감당할 수 있는 신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이들이 100년을 일해도 마련하기 어려운 게 베이징 도심의 아파트다.

 

 

피촌으로 가다

베이징 외곽으로 향하는 버스가 점차 도심에서 벗어나면 버스 안은 농촌 출신 노동자들로 가득해진다. 이들은 낮에는 도심이나 주변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수천에서 수만 명 규모의 거주구역 내 작은 셋방에서 잠을 잔다.



베이징은 자금성에서 시작하는 순환로와 동서남북으로 구분되는데 2환에서 시작, 멀리는 6환까지 확대된다. (베이징을 둘러싼 허베이성에 7환 고속도로가 있긴 하다.) 건물이 2환에 가까울수록 비싸고 5환 밖으로 넘어서면 아주 조용한 농촌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베이징 자체가 워낙 거대해서 (강원도 정도의 면적) 5환을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5환 바깥에 신노동자들의 거주지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필자가 종종 찾아가는 피촌(皮村)도 그중 하나다.



처음 피촌 가는 길의 풍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전쟁 직후의 풍경을 방불케 하는 드넓은 폐허가 나타난다. 지난해 말 있었던 베이징 화재 사건과 시 정부에 의한 퇴거 조치들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시홍먼 지역을 비롯해 펑타이, 창핑, 하이뎬 등 베이징 내 135개 지역에서 벌어진 이 퇴거 조치는 수십만 명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대대적이었다. 최대 10만 명이 강제 퇴거당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나로선 궁금할 수밖에 없다. 모두 어디로 떠났을까? 고향으로 갔을까, 아니면 다른 마을로 갔을까?



피촌은 그나마 비교적 깨끗하고 화재 위험이 없다고 판단됐던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생각보다 깨끗하고 넓은 거주구역이 나타났다. 커다란 아치 입구를 지나 피촌으로 들어가면 사막의 오아시스가 나타나듯 갑자기 활기찬 시장 거리가 펼쳐진다. 우리나라 읍·면사무소 소재지와 비슷한 풍경인데, 옷가게와 슈퍼 등 가게들이 모여 있다.



피촌은 신노동자의 마을이다. 현재 피촌 거주자는 2만여 명인데, 이 중 이곳에 등록되지 않은 외지인이 1만 8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 등록된 인구는 2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꽁위(公寓)’라는 허름한 복층 건물에 사는데, 건물 안엔 한국의 여인숙과 닮은 작은 방들이 빼곡하다. 이곳 주민들은 건물마다 있는 공동 화장실을 쓴다. 시장 물가는 대체로 저렴한데 이곳에서 찾은 한 산시(山西)국수집의 우육탕은 도심에서 먹은 어떤 국수보다 맛있고 깔끔하면서도 가격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베이징 노동자의집

 

베이징 노동자의집’(北京打工之家. 이하 ‘노동자의집’)은 바로 이 피촌에 있는 노동자 문화공간이다. 노동자의집 웨이신(위챗) 계정에 따르면 2009년 10월 일군의 활동가들이 모여 공회를 설립하고 이곳에 공간을 일구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다양한 교육·문화 사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피촌이라는 2만 명 규모의 농민공 마을이 활동 영역이지만, 이들의 유명세는 전국적이다. 공간은 과거에 작은 공장이나 창고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건물을 개조한 것인데 ㄴ자 형태의 단층 건물 두 채에 사무실과 신노동자역사문화박물관·영화상영관·극장·강의실·식당 등 공공시설이 있고, 그 밖에 활동가와 이곳과 함께 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숙소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손 꼽을만한 공간은 신노동자역사문화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신노동자’ 집단의 역사와 정책, 문화, 생활양식, 아동 문제, 여성 등의 쟁점에 대해 전시하고 있는데, 신노동자를 주제로 한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이를 광범위하고 풍부하게 다룬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나아가 십여 년간 신노동자의 정치적·계급적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노동자의집 활동에 관해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의사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만큼 이 장소가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소중해 보였다. 내가 처음 갔을 땐 단체 관람 차 방문한 명문대 학생들이 있었는데 박물관만이 아니라 이들의 진지한 경청과 활동가 A의 열정적인 소개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무려 2시간이 넘도록 이 작은 박물관에서 연설과 대화를 지속했다. 이런 박물관이 빛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이런 만남이 이뤄질 때가 아닐까?

영화관 역시 매력적이었다. 시설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30평 정도 되는 공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이 있었고, 쇠락한 옛날 영화관에서 가져왔음 직한 영화관용 의자가 80여 석 정도 있었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이런 작은 영화관을 만들고 싶어했던 나의 오랜 꿈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노동자의집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무료 상영회를 여는데, 중국 사회를 리얼리즘적으로 묘사한 극영화나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긴 해외 영화들을 많이 상영한다. 지난 5월 12일엔 벤 애플렉이 연출한 을 상영했고, 4월 28일엔 <대불+>이라는 대만 영화를 상영했다. 두 영화 모두 비판적 시선을 견지한 영화들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주요한 행사가 이뤄지는 공간이 바로 ‘극장’이다. 지난 4월 30일 저녁에 열린 노동절 기념 ‘만회’(일종의 저녁 문화제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이곳에서 열렸다. 과연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참여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노동자의집 자체가 피촌 울타리 외곽에 있거니와, 이 작은 동네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얼마나 올까 싶었던 게다. 기우에 불과했다. 행사 시작 2~3시간 전 즈음부터 마실 나오듯 모여든 사람들은 7시가 되자 마당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 마당에선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의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한 물건들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고, 주민 몇몇도 자기 물건을 가져와 팔기도 했다. 딱지치기나 인형 놀이를 좋아하는 꼬마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고, 하늘에선 인근 베이징수도공항을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수시로 지나갔다.

마을 잔치 같은 노동절 문화제

저녁 7시 반이 되자 문화제가 시작됐다. 극장 안은 이미 발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해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300여 명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숫자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언뜻 보면 어린이 장기자랑대회에 가족들이 참관하러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청년 노동자와 중학생이 공동 사회를 맡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각 자신의 역할을 나누고 있었다. 활동가들은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보조하거나 잡일을 맡고, 사람들의 참여를 북돋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공연 구성 역시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는데 정치적 내용보다는 가족적이고 지역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훨씬 강했다. 노동절의 의미를 환기하거나 신노동자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지만,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인지라 누구에게도 위화감을 느끼진 않는 것 같았다. 지역 소학교, 중학교 아이들의 공연이 많았고, 지역 주민의 노래, 활동가들의 연극 공연도 있었다. 연극 공연이 가장 기대됐었지만 아쉽게도 음향 문제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곳에 오기 전까진 전국 대도시를 전전하던 농민공들이었는데, 베이징에서 노동자의집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듯했다. 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노동자의 시와 노래(劳动者的诗与歌)’라는 연속 인터뷰로 제작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의 시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시간 반에 걸쳐 진행된 문화제는 신노동자예술단 소속 쒸뚜어(许多)의 공연으로 끝났다. 그는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生活就是一场战斗)라는 노랠 불렀다. 이 곡은 쒸뚜어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머나먼 타향에서 살아가는 신노동자의 거친 삶과 절망, 의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의 노래가 끝났을 즈음 극장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자리를 뜨고 20대~50대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유행가처럼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신노동자예술단은 신노동자의 삶과 노동을 노래한 음악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전국 순회 공연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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